관련 이미지


대학시절 글쓰기나 영상제작을 할 때마다 한번씩 후보로 오르는 단어 '청춘'.

덕분에 그 단어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종종 생겼다.

시간이 많이 지나 그 때 생각의 경위는 기억나지 않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난 아직 어려서 청춘을 논하긴 이르다."


도대체 청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일까.


'청춘' 하면 대학생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의 대학생활은 치인트의 설처럼 치열하진 않았다. 치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게 싫었고, 그렇다고 나의 이익을 착실히 챙기지도 못했다.

그럴바에야 '이용? 당하면 어때!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라고 말할 정도로 배짱부릴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길 바라면서 무엇이든 방관자로 남으려고 애썼다.

아마 내가 거기서 더 발버둥치려고 했다면 치인트의 설처럼 치열하고 찌질은 다 떠는 캐릭터로 지냈을 것이다. 흠... 다시 생각해보니 내 캐릭터가 쿨하진 않았다. 찌질했어.


초중고대를 통틀어 나의 학창시절은 한결같이 인간관계의 실패였다.

특별히 지목 당해 왕따를 당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교성이 좋거나 단짝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맙게도 다가오는 친구들은 있지만 내 세계에 갇혀 선 긋고 밀어내기 바빴던 걸 기억한다.

그 때의 내 세계는 공허함과 무기력, 텅 빔 그 자체였을 뿐인데.

나는 아마 무난함 그 이하였을 것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혼자 벽을 치면 그만이었지만 대학은 달랐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치인트는 정말 현실 반영이 잘 된 캐릭터들이 모여있다. 설 처럼 똑똑하고 요령없는 사람도, 상철선배같이 뻔뻔하고 이기적인 사람도 있었고, 이유없이 좋아해주는 보라같은 친구도, 애교있게 쫓아다니면서 제 할일은 잘 하는 은택이 같은 예쁜 후배도 있었다. 또 백인호처럼 재능에 몸부림 치는 사람도, 유정같이 뭐든 정치하려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 엮이면서 쓴 맛, 단 맛도 봤지만 내겐 쓴 맛이 강했나보다. 대학시절의 기억이 별로 즐겁지 않은걸 보니.


*


밝고 희망적이고 주체가 되고 나쁜 일보단 즐거운 일이 더 많고 풋풋한 그런 시간들을 청춘이라고 불느다면, 나는 이렇게 씁쓸한 대학시절을 청춘이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청춘처럼 희망적인 단어에 이도저도 아닌 기억만을 안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의 청춘은 학교에서 벗어난 이후로 설정하려고 한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진 안핬지만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며 일도 사랑도 하고 뭐든 하고싶은 일이 많아지던 그 때. 나는 그 때를 청춘이라 부르기로 했다.


누구나 청춘의 시기는 가지겠지만 그 시기는 다를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청춘이라 부를만 한 시간들이 더욱 늘어가길 기대해 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