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집을 자꾸 찾게 된다. 2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거리에 지쳐서 잠시라도 시선 돌릴 곳이 필요 했는지도 모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김연수 번역.
안그래도 최근 읽은 책 중에 김연수 작가의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건, 레이먼드카버의 대성당.
대성당에 실린 단편집은 총 12편.
깃털들/체프의 집/보존/칸막이 객실/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비타민/조심/내가 전화를 거는 곳/기차/열/굴레/대성당
제목을 보면 어렴풋이 내용들이 생각이 난다. 신기한 일이다.
사실 단편집을 몇 권 읽어도 기억에 남는 단편이란 참 드물었는데...
신기하게도 레이먼드카버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분명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한,두편을 읽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아.. 이게 단편이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레이먼드카버가 그려내는 단편은 정말 아주 정말 일상적이다.
이걸 왜 그려냈을까? 의문을 갖기시작하면
일상이지만.. 그 일상 중에서도 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 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직장 동료와 부부, 이혼한 부부, 아들을 잃은 부부, 빵집 주인, 불륜, 귀청소, 알콜중독자, 가정부, 살인자와 노부부, 도박에 빠진 남편과 떠돌이 가족, 장님...
그리고 이들의 일상 속에서의 답답한 상황과 그들의 고뇌를 들여다보다보면
소름끼치도록 끔찍학 아슬아슬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아들의 생일날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당신은 아들을 완전히 잊어버렸구먼"이라는 신원미상의 남자에게 전화를 받는다면?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지 못하겠다면? 더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유조차 짐작도 못하겠는데, 상황이 나 혼자 미쳐버린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면?
술에 취한 남편이 지붕에서 떨어져 피를 흘리며 날 향해 웃는다면?
레이먼드 카버는 그 짧은 몇장을 읽어가는 새에 나를 정신없이 벼랑끝으로 몰아세운 후
어느 새 정신차려보면 나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당겨 놓고 그는 날 대신해 저 벼랑 끝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뒤 돌아서 끝이 안보이는 벼랑 끝에서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본다.
한강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뛰어들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레이먼드카버의 단편은 하루에 한작품이 좋다.
그 이상은 사치. 낭비다.
그러니까 나는,
그만큼 여운이 크고 길다는 말이 하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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