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도가니를 봤다.
생각해보면 나는 모두들 말하고 보는 것들을 외면하거나 보지 않는 편이다. 왜일까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은가부지, 라고 속편히 넘기면 될 일이다.
TV, 인터넷, 뉴스, 영화 개봉 등 화제 속의 도가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실 도가니는 빠르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 버얼써 묻히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뉴스거리가 넘치고, 그것 말고도 볼거리가 아니 봐야 할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도가니에 손을 댄 것도 이때문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잊혀지고 있기 때문에.
아니,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왜 벌써 묻히고 있는거냐 너는?
기분 좋지 않은날 방문한 서점에서 내 손에 들린 이 책은 새침한 표정이었다.
니가 읽어보고 어디 한번 판단해 보라고 퉁퉁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책을 구입한 후 한참동안 책에 펼치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리 없는 책이라, 그닥 내키지 않아서.
그리고 일주일즈음 지났을까, 역시 무척 기분이 좋지 않았던 어느날
버스에서, 전철에서 펼쳤다. 책은 더디게 읽혔다.
이야기는 강인호가 서울을 떠나 무진에 위치한 농인학교인 자애학원으로 취직되면서 시작된다.
그와 함께 맞물려 알려지는 한 소년의 의문스러운 죽음.
나는 이로 인해 어떤 사건의 단서나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는데,
단지 내가 추리소설을 즐겨 읽은 탓일까? 소년은 그냥 죽었을 뿐 그 소년의 죽음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또 강인호가 무진에 가 불의라는 것에 고개를 숙이는 데는 그러려니 싶은, 아무런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강인호에게는 본능적인 불편함이 시작되었나보다.
그의 바람과는 별개로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굴러왔다.
어느새 그는 담임이라는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 불편한 사건과 마주한다.
하지만 농인 소녀, 소년의 적나라한 진술은 오히려 지어낸 이야기 같았고, 철저하게 묵살되었다는 것 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래도 사건은 계속 된다.
소녀들의 진술을 녹화한 VCR을 든 서유진은 변두리 극장의 광대가 된다.
먼저 교육청으로, 방과후 일이라서 교육청 관할이 아니므로 시청 사회복지과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시청 사회복지과 관할이 아니다. 다시 교육청으로.
돌고 돌며 소리를 높이자 그들은 말한다.
뭐, 행정이란 다 그런거란다.
결국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알려진다.
그리고 곧 끓는 냄비처럼 팔팔팔 날뛰기 시작했다.
인터넷 댓글러들과 입 다물고 있던 진술자들까지 가세했다.
진술은 잔혹했고, 상식 밖의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경악하고 더욱더 들끓는다.
그러다 문득 원시시대에 생존한 의심 많고 생존력이 강한 인간이 고개를 든다.
그들은 고개를 빼꼼 들고 들은 그게 정말 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전도한다.
그리고 재판은 시작됐다.
끊임없는 공방 속에 아주 당연한 결과를 에측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흐름으로 흘러갔고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
재판의 결과로 강인호는 불법 전교조 활동을 했고, 제자를 성폭력한 후 자살로 몰고간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이었고,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되었고, 아이들은 문란한 농인들로 하지만 보살핌받아야 하는 존재로 결론이 났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나간다.
재판 후 그들에게 나타난 변화는 아이들이 소리를 내고, 폭력을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비루한 천막 아래서 배우고,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다시 밟히고, 또 들고 일어서고, 또 좌절 당한다.
그리고 강인호는 또다시 도망친다.
그리고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공지영 작가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신문기사 한 줄 이었다고 한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어 엘뤼아르의 글을 소개하면서 '삶과 현실은 언제나 참담함에 있어서나 거룩함에 있어서나 우리의 그럴듯한 상상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미화된 언어나 진주를 꿴 듯 아름답게 포장된 '말'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갯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왁스를 칠한 마루와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강아지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며, 걸레도 있으며, 들에 피는 꽃도 있고, 무덤 위에 피는 꽃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삶 속에 시가 있다. - 엘뤼아르
*
마지막 온점을 확인하고 책을 덮는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조금 넘겼다.
내일 일어날 때 힘겹겠는걸..
살짝 걱정이 든다. 그래도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이 담담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리고 문득 나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무엇에 분노한 것일까. 그들은 정말 분노했을까?
한동안 페이스북에 도가니도가니도가니로 들끓었을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코멘트를 남긴걸까.
그들은 정말 분노했을까? 알아야 할 사실이라면, 그냥 알기만 하면 되는건가?
그래도 되는건가?
오랫만에 친구들이 모였을 때 물어 봤다.
한 친구는 말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아주 불편하게 느껴졌어.'
그래, 사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하지만 다시 보면 저편에도 이 편에도 기독교인들이었어. 나는 어느 쪽이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나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어쨌든 크리스찬이다.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사실상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면 돼.
내가 아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권을 허락하셨어. 심판은 나의 몫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그건 맡기면 돼.
나는 강인호, 혹은 장학관 최수희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지만 그게 정말 옳은건지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믿는것이 옳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있다면 도망치지 않길 바란다. 강인호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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