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재미있는 책이 보고싶어 친구에게 가볍고 재밌게 볼만한 책 추천을 부탁했다.

그 친구는 병원에 꽤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때 읽었다던 책을 소개했다.

읽으면서 갑갑함이 밀려왔다는 말도 함께 첨언했다.


서점에서 기욤 뮈소의 책을 많이 목격해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구해줘라는 책이 제일 많이 보였던 것 같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가볍고 진부한 인터넷소설같은 느낌을 받았나보다.

그래서 손이 가지 않았던것 같다.

이왕 추천이 들어온 김에 당장 읽어보기로 했다.


*

소재는 시간여행.

소재만 본다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소재는 거의 없다.

이 작가는 시간여행이란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줄까.

잠시 책을 덮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상상해본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내 인생을 전적으로 어떻게 바꿔보고 싶다는건 아니지만 순간순간의 어리석음으로 후회가 밀려와 몸서리치게 만드는 기억들은 있다.

예를들면, 초등학교시절 바보같이 화낼 일도 화내지 않고 넘어간 일, 중학교 때 좀 더 많이 놀지 못한 것이라던지, 고등학교 때 암울하게 지낸 일이라던지, 대학교때 휘둘리며 지낸 일이라던지, 사회 초년생때 쓸데없는 겁이 너무 많았던 일이라던지,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지 못한 일이라던지, 누군가를 특히 미워하고만 지낸 일이라던지...

하지만 내게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리가 없으니, 나중에 지금이 떠오르지 않도록 행동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

혹 있다고 해도 리스크가 클테니 후회할 일을 적게 만들어야지.


*

그리고 지금 삶이 그렇게 싫지 않다.

상처받을땐 상처 받은대로 자양분 삼고,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누리면 된다.

완벽한 삶이란 있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굴곡도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재미없을 리 없다.


어느날 저녁 엘리엇은 예쁜 여자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다가 처음에 타려했던 객차를 타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또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을, 친구를 그리고 인생의 소명을.
그 해, 며칠 사이에 엘리엇은 진정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 p.136 열아홉의 엘리엇 중


이 부분을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좋지 않았던 어린시절을 보낸 엘리엇.

일리나와 친구인 매트를 만나면서 엘리엇은 진정한 남자가 되었다는 말이 사람이 됐다는 말로 느껴졌다.

사랑하는 여자와 우정을 나눌 친구와 하고싶은 일까지 생겼다.

엘리엇의 인생에 이보다 완벽한 삶이 있을까.


하지만 엘리나를 잃고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다 인생의 막바지에 인생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엘리엇.

사랑하는 여자 일리나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

자신의 건강과 인생의 친구도 스스로 잃어가면서 외로움으로 가득 찬 삶을 짊어졌다.

그래도 참아낼만큼 그는 일리나가 없는 삶이 괴로웠나보다.


*

이래서 나에게 책을 추천한 친구는 보면서 갑갑함이 몰려왔다고 했나보다.


하지만, 누군가, 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살다보면 좋은 날이 온다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노년의 세 사람이 살아서 만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해 엘리엇은 처음 일리나가 없는 삶 30년, 일리나를 살리고 일리나와 친구가 없는 삶 30년.

도합 60년을 외로움과 싸우며 지내왔다.

세 사람 각자의 상처와 시간의 깊이가 와닿아 더욱 마음이 저린 엔딩이었다.

엔딩이 이렇게 완벽할 수가 없다. 

영화처럼 장면이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점점 영화 시나리오 같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워낙 스마트기계들이 보급되어 하나의 컨텐츠가 원소스멀티유즈가 된다.

드라마가 영화처럼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벌써 꽤 오래 전의 일이고, 최근에는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화, 공연화 되고, 소설은 영화처럼 쓰인다.

같은 작품을 여러가지 컨텐츠로 접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같이 접하고 장르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도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직 개봉 전인것 같은데 조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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