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월 12일 포스트 옮김.



한껏 기대가 된다!


이유 일은 게릴라 극장이기 때문이고,

이유 이는 연희단거리패이기 때문이고,

이유 삼은 공연명이 마음에 들어서,

이유 사는 포스터가 매력적이라서,

이유 오는 이미 보고 온 남자친구에게 강추 도장을 받았기 때문! 

 

그래서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공연!! 변두리 극장이었다!!



아직 공연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광대 분장을 한 배우들은 이미 나와있었다.
입장하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진한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광대가 앞을 가로막으며 손을 내민다.
놀라서 깜빡깜빡 쳐다보니까 배우가 좀 당황스러웠나보다.
아니, 내가 당황한거구나.

 

좌석 안내를 받으며 티켓을 살펴보니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입장 가능'한 이유를 알겠다.

이미 무대에는 배우들이 나와서 계속해서 입에있는 종이 줄을 잡아 빼고 있었다.
악기 들고 슬랩스틱을 하고, 뭔가 자기들끼리 쑥덕쑥덕 하다가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한다.
그리곤 기어이 책상을 펼치고 신문을 넘겨가며 말을 건다.

'요즘 왕따 때문에 시끌벅적하죠?'

 

왠지 게릴라 극장의 이미지는 항상 사람이 많아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느낌이다.
음.. 좋은 의미로 말이다! 즐거워 보여.

전에 있던 회사에서 배우들은 공연 시작 전 관객몰이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던데
저 광대 분장을 하는 배우들도 그렇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자 괜히 더 웃어주고 싶고 더 박수도 쳐주고 싶어졌다.

관객 몰이를 하는 공연의 장점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관객과 배우들의 친밀감이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이뤄진다는 것! (이건 상관 없는 말이구나! ㅋ)

원래 목적은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뭐 어쨌건, 공연은 능청스럽게 시작됐다.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만큼.

 

*

공연은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 됐다.
마임, 말장난, 마술, 음악과 극중극의 형태(문학에선 액자형식이라고 배웠던가?).
내가 보기에 옴니버스식이긴 했지만 묘하게 이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막이 시작하면 낄낄깔깔크크 웃고, 막이 끝날 때마다 드는 허무함과 공허함이 좋았다.
요즘 대학로에 만연한 개그 공연들과는 다른 유머와 찌르는 듯한 말장난이 깊이 다가왔다고나 해야할까?

그래서인지 더 공감되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정확한 제목은 모르니까 내가 기억하는 대로 지어봤다.

 

변두리극장 

가장 처음에 나오는 에피소드로 변두리 극장의 표를 얻은 부부가 잠시 외출하기 위해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란.. 참 씁쓸하기 그지없다. 

공연 변두리극장식의, 그러니까 뭐랄까, 카를 발렌틴식의 개그가 이런 거겠지?

 

옷걸이 사나이의 편지

뚜벅뚜벅 걸어온 광대가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마임을 시작한다.
광대는 1인 2역을 했는데, 와 정말 놀라웠다.
착시현상이 일어나서 눈을 몇번이나 꿈뻑꿈뻑 할 정도였으니까!!
마임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마임을 처음 본것도 아닌데도.

그리고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고 니가 그린 기린 그림은 못 그린 기린 그림이다」라는 느낌의 편지를 읽는데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도돌이표

변두리극장의 악단이 연주를 시작한다.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악보대로만 연주하기로 하고 연주를 시작하지만 어쩐지 잘 안맞았나보다.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리치고 연주는 중단된다.
지휘자가 왜 자꾸 반복하냐고 다그치자 악사는 말한다. 도돌이표!!

 

으하하하하

나도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피아노를 치다가 악보에 앞 뒤에 도돌이표를 달고 갖혀있는 2마디를 마주칠 때마다 고민이 됐었다.
다음으로 어떻게 넘어가지...라고.
물론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와서 2번만 치면 돼. 라고 명쾌하게 해결해 주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웃기네. 왜 2번만 치면 되지?

 

예쁜 말로 싸우기

나이가 차면서 어느순간 내가 덜 피곤하면서 상대를 열받게 하는 스킬을 늘려간다.
웃으면서 화를 낸다던가, 차분하게 욕을 읖조린다던가, 순진한 표정으로 깐족대는 그런 종류의 것들 말이다.

때로는 손가락질 하나와 표정, 입꼬리의 움직임은 상대의 마음에 스크~래취를 내는데
굉장한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어느순간 모순되어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면 어이없다.
그냥 화나면 화 내고, 울고 싶으면 울고, 웃고 싶으면 웃으면 되는데
화가 나도 태연하고, 웃겨도 화를 내고, 울고 싶은데 웃는다.
그 알량한 자존심과 지고싶지 않다는 승부욕, 자만심. 그것들이 뭐길래, 우리를 이렇게 모순되게 만드는가.

 

제본공 이야기

한 제본공이 전화를 건다.
'네 안녕하세요, 맡기신 책이 완성되었고, 어디로 보내드리면 좋을지, 영수증을 함께 보내드려도 좋을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작년 가을, <그랜드 민구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장소 대여를 위해 구청에 전화를 걸 때가 생각났다.
고작 장소를 반나절 사용하는 걸 허가 받기 위한 절차였다.
전화가 담당자에 연결되기까지 2주의 시간이 걸렸다.

구청 한 직원으로 시작해 문화과 총무과 건설과 전기과 다시 총무과에서 문화과로 전화를 돌리다보니
내가 어느 어디랑 어떤 번호로 통화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함께 기획하는 동료들이 어떻게 됐냐 물었을때, 할퀼 듯이 크르릉 댔던게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저 제본공이 그 때의 내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묘한 동질감이 들어서 깔깔댈 수밖에 없었다.

어디였더라, 행정은 그런거야!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알레그로!! 

엔딩 공연인데 무대가 죄다 무너지는 씬이었다!!
지휘자 열받아서 신발 신더니 지휘자 석의 스프링 달린 장치를 타고 앞뒤로 옆으로 흔들어대면서
알레그로!!를 외친다!
그럼 연주자은 미친듯이 연주를 하는데 그건 연주라기보단 소음에 가까웠다 ㅋㅋ//

그러자 만국기가 떨어지고, 천장에서 돌이 떨어지고, 구조대가 출동하고, 벽이 무너진다! 

게릴라는 대체로 무대를 다 부숴버리는 걸 좋아하나보다 ㅋ

 

변두리 극장은 원래 독일 작가인 카를 발렌틴의 단편이라고 한다.
칼 발렌틴은 끼가 많았나보다. 배우에 작가에 영화 제작자까지 다 했다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잘 몰라서 공연 상세페이지 참고해서 이것저것 검색 해 봤는데 공부가 많이 됐다.
뜻하지 않게 찰린 채플린까지 찾아보게 됐고.

요약하면 칼 발렌틴은 독일의 찰린 채플린라고 생각하면 될 듯.

공연 상세페이지에 보면 카바레트 드라마라는 장르가 나오는데,
간단히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사회에 대한 비판, 풍자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게릴라식 극의 형태라고 한다

나는 정보를 좀 잘못 파악하고 있었나보다.
카를 발렌틴의 단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건조한 글이라고 하던데
그걸 광대극으로 표현해내다니!! 완전 적절하네!! 라고 생각했는데,
좀 찾아보니까 그렇게 각색한 게 아니라 원래 장르는 광대극이었나보다 ^^;; 

공연이 인상깊어서 변두리극장 책을 주문했다 !! 

나머지는 책을 읽고 나서 써야겠다!!


* 2012년 1월 12일 포스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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