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 2012년이었던 것 같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는 내게 "어쩌면 네가 좋아할 지도 모르는" 작가라며 단편집을 쥐어주었다.


그 때 나는 어릴적 잃었던 독서라는 취미를 다시 붙이고 있었다.

이유는 단지 남자친구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였다.


나는 솔직히 책은 술술 잘 읽었고 읽은 책도 많았지만(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지만),
설을 시간 들여서 읽어야 하는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그 땐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도 해야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운동도 해야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사람도 만나고,
잠도 자야하고 
해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2~3시간이면 볼 수 있는 영화나 공연만 해도 충분한데
굳이 소설책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너무 헛웃음이 나오는 생각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계발서나 참고서 따위의 책들만 찾았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의 고리를 끊고, 소설의 매력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 책이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한동안 단편의 매력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작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소설을 고르고, 어떤 부분이 나에게 좋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자마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김애란 작가의 특징이 뚜렷하게 느껴졌던 책이었다.

낭랑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실제로 어릴 적을 기억이나 하는 듯 담담하게 묘사한 글이나, 문체, 그리고 내용까지 모두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김애란 작가는 자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그리는 가족이야기는 항상 자기에 대한 고민과 가족에 대한 고민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 그 안의 생각들이 공감으로 다가왔다.


"나도 이렇게 생각해 본적 있는데."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이렇게 말하는 구나."


특히 김애란 작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듯 한데,

이상하게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절대 부정적인 존재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솔직히 너무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 작가의 생각이 짙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고,
본인의 생각을 기만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밉지만 절대 미워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담담하면서도 마냥 어둡지 않고 낭랑하고 긍정적인 그녀의 말투와 생각에 매력을 느꼈지만 말이다.


혹시나 해서 해설부분을 뒤져보니 그부분에 대한 설명이 간단히 있었다.

아버지를 긍정함으로 자신을 긍정한다고 써있는데,

솔직히 이 말이 완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내가 느낀 부분이 그녀가 특별한 이유인 것 같다.





단편집을 자꾸 찾게 된다. 2시간 가까이 되는 통근거리에 지쳐서 잠시라도 시선 돌릴 곳이 필요 했는지도 모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김연수 번역.

안그래도 최근 읽은 책 중에 김연수 작가의 단편집인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쨌건, 레이먼드카버의 대성당.

대성당에 실린 단편집은 총 12편.

 

깃털들/체프의 집/보존/칸막이 객실/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비타민/조심/내가 전화를 거는 곳/기차/열/굴레/대성당

 

제목을 보면 어렴풋이 내용들이 생각이 난다. 신기한 일이다.

사실 단편집을 몇 권 읽어도 기억에 남는 단편이란 참 드물었는데...

신기하게도 레이먼드카버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분명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한,두편을 읽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아.. 이게 단편이구나.. 라는 느낌이랄까?

 

레이먼드카버가 그려내는 단편은 정말 아주 정말 일상적이다.

이걸 왜 그려냈을까? 의문을 갖기시작하면

일상이지만.. 그 일상 중에서도 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 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직장 동료와 부부, 이혼한 부부, 아들을 잃은 부부, 빵집 주인, 불륜, 귀청소, 알콜중독자, 가정부, 살인자와 노부부, 도박에 빠진 남편과 떠돌이 가족, 장님...

 

그리고 이들의 일상 속에서의 답답한 상황과 그들의 고뇌를 들여다보다보면

소름끼치도록 끔찍학 아슬아슬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아들의 생일날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당신은 아들을 완전히 잊어버렸구먼"이라는 신원미상의 남자에게 전화를 받는다면?

그녀가 하는 말을 하나도 듣지 못하겠다면? 더구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유조차 짐작도 못하겠는데, 상황이 나 혼자 미쳐버린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면?

술에 취한 남편이 지붕에서 떨어져 피를 흘리며 날 향해 웃는다면?

 

레이먼드 카버는 그 짧은 몇장을 읽어가는 새에 나를 정신없이 벼랑끝으로 몰아세운 후

어느 새 정신차려보면 나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당겨 놓고 그는 날 대신해 저 벼랑 끝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뒤 돌아서 끝이 안보이는 벼랑 끝에서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들여다보고 들여다본다. 

 

한강 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뛰어들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그래서 레이먼드카버의 단편은 하루에 한작품이 좋다.

그 이상은 사치. 낭비다. 

 

그러니까 나는,

그만큼 여운이 크고 길다는 말이 하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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