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 전부터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심취해 있다.
잊을만하면 이 책을 펼쳐보곤 한다.

이 책을 읽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깊게 생각하게 됐다.
나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 삶의 대부분이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종교도 사랑의 종교를 부르짖었고, 온갖 종류의 사랑의 홍수 안에 있었지만,
정작 받을 줄도, 특히 줄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인정한다.

<사랑의 기술>은 "사랑"이라는 감정적인 단어에서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머리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시장 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배하는 교환 형식과 동일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든 건 나뿐이었을까.
이토록 사랑에 대해 냉소적으로, 반박할 수 없게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오직 영혼에만 유익할 뿐, 현대적 의미에서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랑은 우리가 대부분의 정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사치에 지나지 않을까?"라며 오히려 회의적인 태도가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나도 한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은
아마, 사랑이 없다면 삭막할 세상과 메말라버리는 모든 관계들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은 필요한 것 같은데.

다행히 <사랑의 기술>은 사랑할 필요 없다고 외치는 책은 아니었다.
단지, 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거지.

*

세상의 어떤 사람이 상처 없이 살아왔을까.
앞으로 살아가야 할 해맑은 어린아이들을 보면 난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
그들이 앞으로 받을 상처와 견뎌내야 할 일들에 내가 막막해져와서.
안아줄 수 없다면, 작은 보다듬음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어쨌든 사랑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개인으로서든 인류로서든 결정되어 있는, 본능처럼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 쫓겨난다.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고, 미래에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
이러한 분리는 불안을 일으키고, 인간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사랑으로 대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대부분 왜곡되어있다.
우리는 그 왜곡된 사랑의 홍수 속에서 상처받고 지쳐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사랑을 하려면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책은 사랑의 종류와 대상을 구분해 하나하나 텍스트로 기재해 두었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다.
어떤 사랑을 규정짓고 설명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랑에 대해 한정 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유용하면서도, 위험하다.

부모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보답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획득될 수도, 만들어 낼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 여기에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어머니의 사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적잖은 충격이 있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없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울며 매달린 적이 있다.
"왜, 그때 날 더 사랑해주지 않았어? 왜 날 더 신경 써주지 않았어?"
한풀이에 가까운 외침이었지만, 
내가 말 함으로 엄마와 나는 둘 다 상처받았다.
사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럴거면 나를 왜 낳았어" 따위의 막장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딱히 나 같은 딸을 원치 않았을 것 같다.
더 예쁘고, 착하고, 싹싹한 딸이면 더 좋았겠지.

엄마랑 나는 둘 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지나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때 알았더라면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을까.

<사랑의 기술>을 읽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사랑에 무지한지 슬플 정도로 깨닫게 된다.

문득,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가사 한 구절이 생각난다.
"오, 넌 나의 상처"

작품 속의 슬프고 왜곡된 사랑은 아름답게 미화되고
보고 듣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행복하자.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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