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에 주의하세요..!
파울로 코엘료라고 한다면 역시 <연금술사>가 생각이 난다.
꽤 오래 전에 읽었던 <브리다>도 나쁘지 않았던 기억에 신작 <스파이>에 대한 기대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책의 뒷편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죄였다."
"마타 하리는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로 그 시대의 남성들의 요구에 저항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택했다.
여전히 권력에 의해 무고한 삶이 희생되는 오늘날,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자유, 독립적, 여성.
이 키워드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마타 하리'라는 인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몰랐기 때문에
첫 장의 '사실에 근거함'이라 쓰여있는 문구는 믿음직스러웠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그녀의 처형장면을 시작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마타 하리.
곧 이어 마타하리가 변호사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통해 그녀의 일생을 엿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실망스러웠다.
누군가의 결과물을 두고 평가하는 것 같아 썩 좋진 않지만,
내가 실망감을 느낀 부분을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다시 정리해볼 겸 짚어보고자 한다.
*
책을 통해 내가 느낀 마타 하리는 불쌍한 여자다.
학생때 학교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로 그녀는 사랑을 부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넓은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믿고 한 결혼생활은 불행했고,
남편의 사랑없음에 벌어진 안드레아스부인의 총기사건은
그녀가 결혼과 사랑, 가정에 관한 사회적 관습을 벗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술 더 떠 그녀에게 참다운 사랑을 알려주는 이는 나타나지 않고,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 사랑은 독이에요."라는 충고까지 듣는다.
그 시대에서,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에게 사랑을 거부하도록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생활에서 도망쳐 마타 하리로 이름을 바꾸고 무용수로 살아가기로 한다.
한 남자의 정숙한 부인, 아이들의 자애로운 엄마의 타이틀을 버리고
팜므파탈, 창녀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 자체는 놀라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 선택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 한번 이름을 바꾸고,
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세상 수많은 곳 중 어딘가로 가서
완전히 다시 시작하는 편이 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남은 인생이 둘로 나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여자와,
아무도 아니었고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들려줄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는 여자.
내가 감옥에 갇힌 이 순간에도 내 영혼은 여전히 자유롭습니다."
마타하리는 그녀 자신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편지에 썼다.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의 애처로운 합리화로 보였다.
다행히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있었고, 그것에 열광받았고, 부와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독자로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치와 허영심, 거짓과 우선, 자만심에 빠져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된장녀로 보였다.
(작가는 주인공이 환상에 젖어 편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을 찾은 적 없다", "행복해지길 바란 적 없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삶을 통틀어 사랑을 갈구하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살았다.
그 사랑의 종류가 팜마파탈인지 무용수로서 대중의 사랑이었든지, 아니면 자기애였든지 어떤 종류였던 말이다.
하는 말과 행동이 달리 보여 그녀가 더욱 애처로워 보였는지 모른다.
그녀가 자유롭다고 생각한 이유는 결혼생활에서 도망쳐 무용수로 살아간 것인데,
그 자유로움을 위해 수많은 거짓말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원조해 줄 수많은 남자와의 잠자리에 매여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란 타이틀을 단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타하리를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있다.
지금도 정치 싸움과 권력싸움에 언론플레이 등으로 마녀사냥하는 꼴을 지금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타하리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이 유일한 죄라는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그녀가 피해자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녀가 스파이를 받아들이고 활동하지 않았을 뿐이지만.
*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도 적어본다.
"유럽을 사로잡은 화려한 무희이자 전쟁 스파이...
시대를 앞서간,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여성 '마타 하리'
삶의 어느 순간에도 진정한 나로 살고자 했던 그녀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고귀한 메시지"
"삶의 어느 순간에도 진정한 나로 살고자 했던 그녀"가 우리 시대에 던지는 "고귀한 메시지"는 도대체 뭘까.
정리를 하며 다시 훑어봐도 그 "고귀한 메시지"는 뭔지 모르겠다.
"이 씨앗들은 네가 다른 꽃씨와 구별하지 못할 때라도 언제나 해바라기로 피어날 거야.
아무리 원한대도 장미나 우리 나라의 상징인 튤립으로 변할 수는 없어.
타고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게 무엇이든 너의 운명을 기쁜 마음으로 따르도록 해라.
꽃들이 피어나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되지.
그러다 시들면 씨앗을 남겨 다른 존재들이 신이 하시는 일을 이어가게 한단다.
꽃들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영원한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름다움도 시듦도 지나가고 새로운 씨앗을 남길 거야.
네가 기쁠 때나 아플 때나, 슬플 때에도 그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어.
모든 것은 지나가고 늙고 죽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아름드리나무들도 이렇게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단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결코 조급해하지 말아라"
또 어린시절 어머니에게 받은 씨앗 이야기도 멋진 말을 쓰기 위해 넣은 에피소드일까.
개인적으로 그녀는 씨앗의 의미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
이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어서 번역이 잘못됐나 의심했다.
애초에 그녀가 가려던 방향은 어디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이 문구를 읽고 당황스러워했다.
그냥 멋진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싶을 정도로.
"나의 삶도 이와 같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주고 죽어버린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또 편지의 막바지에 소년과 나이팅게일 이야기를 하면서 소년을 위해 희생한 나이팅게일을 자신과 동일시했다.
나는 또 당황스러웠다. 누굴 위해 희생한걸까, 마타하리는. 마타하리의 소년은 도대체 뭐였을까.
(나만.. 나만, 이해를 못한건가...!!!! ㅠ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느낀 궁금증을 누군가 풀어줬으면 해서 찾아봤지만 속 시원한 글을 찾지는 못했다.
모호하게 알듯 모르겠다.
*
첫번째는 광고문구와 책의 내용이 매치되지 않는다는 느낌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두번째는 마타하리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끼지 못함에 당황스러웠고,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라는 생각에 허망함이 느껴졌다.
물론, 작가는 마타하리라는 인물 자체를 보이는데 목적을 두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독자로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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